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류큐 왕국 (문단 편집) == 언어 == 류큐 왕국은 [[류큐어]]를 써왔다. 하지만 류큐어는 지역별로 편차가 커서 [[오키나와어]], [[쿠니가미어]], [[미야코어]] 등의 방언 혹은 개별 언어들로 나뉜다. 이 가운데 류큐 왕국의 표준어의 역할을 한 것은 오키나와섬 중부 및 남부에서 쓰인 [[오키나와어]], 그 가운데에서도 [[슈리]]에서 사용된 슈리 방언이었다. 중국 측에서는 류큐와 중국의 민족적, 언어적 연관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중국 환구시보는 "과거 오키나와 주민 대부분은 중국 대륙의 [[푸젠 성]], [[저장 성]], [[대만 섬]] 출신이며, 언어와 제도도 중국 대륙과 같았다"는 중국의 연구자의 주장을 싣기도 했다.[[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398786|#]] 류큐의 지정학적 위치상 역사적 중국에서 많은 문화적 영향을 받고 많은 인적 교류가 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면 류큐는 바로 옆인 대만섬과 교류가 많았다. 19세기 말 이전까지 일본보다 오히려 대만섬과 교류가 많았을 정도. 메이지 덴노가 첫 대만 침공을 했을 때의 빌미도, 류큐 어부 세력과 대만 어부 세력 사이 충돌로 청나라가 개입한 것에 대한 것이었다. 수백 년간 일본 정부 측에서 행정적 관리도 제대로 안 하던 류큐 어부들에 대해 갑자기 메이지 덴노가 자국민 보호를 선언 한 것이다. 청나라가 대만 어부에 유리한 행정 처분을 하고 대만 영해 상습 침범을 한 류큐 어부를 사형시키자(류큐와 대만 사이 흔했던 일로 처음 있던 일은 아니다), 이 핑계로 대만에 쳐들어간 것. 그러나 대만 측에서 류큐로 이민 정착 형태로 옮기는 경우는 오히려 일본에서 류큐로 이민 정착하는 경우보다 더 적었다. 일본 본토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류큐로 도망치듯 망명한 일들이 많아서. 하지만 환구시보가 주장하듯이 류큐와 '중국'(대륙이든 대만이든) 사이의 친연성은 그리 높지않다. 류큐 민족의 [[주류]]는 [[일본어족|일본계와 근연 관계로서 중국계와는 비교적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주장은 고고학적 발굴과도 맞지 않는 것이다. 중국 대륙이나 대만과 언어적으로 공통점이 있을 수도 있는 시기는 선사 시대~고중세뿐이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인의 선조가 [[선사시대]]에 중국 남부에서 대만으로 건너간 후 태평양 곳곳으로 퍼져 나갈 때에 오키나와에도 진출한 적이 있기는 한데, 이 시기의 중국 남부-대만-오키나와의 공통점이나 유사성은 현재 중국 대륙의 해당 지역에 있는 한족이나 비오스트로네시아계 소수 민족과는 관련이 적다. 이는 삼국 시대와 남북조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 남부에 살던 오스트로네시아계 종족들이 죄다 한족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류큐에는 중국 쪽에서 건너간 것 이상으로 일본에서 류큐로 건너간 사람들도 많다. 만약 문화적 영향력 그 이상의, 민족적 동질성을 나타낼 수준의 강력한 교류가 있었다면 중국 대륙과 가까운 사키시마나 그보다 더 대륙과 가까운 대만 섬에는 이미 중세 이전부터 왕성한 문명 활동이 있어야 했겠지만 현실은 없었다. 그래서 중국의 이러한 행보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영토 분쟁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